해미공항 개항은 지역 정치인들의 허황된 욕심일 뿐일 가능성이 많다
[칼럼]백다현 서산포스트 객원기자
우리나라에는 외국으로 가는 관문역할을 하는 국제공항과, 국내선전용공항이 있다.
국제공항:양양공항,,김포공항, 인천공항,청주공항, 대구공항, 김해공항,군산공항, 무안공항,제주공항
국내공항 :여수공항,원주공항,포항공항, 울산공항,광주공항,대전공항
명멸해간 많은 공항들
지금은 있는지도 모르는 공항
서산의 지역사회는 자치의 기간 내내 서산시가 감당하기 어려운 SOC사업을 하겠다고 포부 있게 발표하여왔다.
지하철 9호선과 거가대교의 예를 보면 민간투자방식의 SOC 투자는 사용료의 폭등이 언제든 시도되고 업체가 이익을 보지 못할 경우 자치단체와 정부의 예산을 보조해주면서 업체는 손해 보지 않지만 주민의 복지는 강제 양보되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한민국역사상 명멸해간 공항들의 역사를 조망하여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1.예천공항
.1989년경에 개항했다. 한때 공항이용객수가 40여 만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자 차량이용률이 높아져서 공항이 점점 한가해졌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서울을 오갈 때는 차를 타고 다녔지 비행기타고 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초반에는 서울 예천간이 4시간 30 분 걸리기 때문에 항공수요가 꽤 있었으나 중앙고속도로 개통이후 비행기보다 시민들이 자신의 차를 이용하는 걸 선호했다고 한다.
수속이니 뭐니 복잡하고 거기서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느니 내 차로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르니까 비행기를 외면한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김포-예천 간 노선의 운영하면 생기는 피해액을 항로 운영사에게 보전해서 인공호흡 시키다가 결국 폐지했다.
그 액수가 얼마였을까? 지금은 공군 연습공항으로 사용한다.
아시아나가 예천 제주 간 항공노선을 폐지한 후 민간여객기 사용이 전무
해미공항이 적자노선이 되어도 서산시 예산 투입 없이 지속적 운항이 가능할까?
2. 부산국제공항 수영비행장. 부산이라 경제적 운영이 좀 될 거 같은데 지금은 조류정도나 이착륙하는 비행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1940년 일본이 군사목적으로 조성했던 비행장, 김해공항이 생기자 수영비행장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김포공항 이후 한국의 두번째 국제공항이었다.
1976년 김해로 민간부분이 이전된 후 1996년까지 군사공항으로 이용되다가 이제는 폐쇄의 길로 들어섰다.
3. 목포공항: 지금은 f1서킷이 자리 잡음.
자동차소리가 비행기소리를 대신해서 소음만큼은 국제공항 급이 맞음.
1970년부터 김포-목포-제주 간 중간기착공항이었음.
ils같은 '항행 보조 장치'가 없어서 약점이 컸음.
툭하면 광주공항으로 회항이나 피난이 이어졌고 해안가에 있어서 해무가 잦아서 이착륙에 말도 못할 어려움이 많음.
해미비행장은 바다위에 있어서 해무가 더 많아서 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1993년7월 26일 아시아나 항공 설립 후 첫 사고가 여기서 터짐.해미비행장의 경우 당초 약속은 이륙은 안면도 쪽으로 하고 착륙은 육지 쪽에서 한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현지 주민들은 말해왔다.
민간항공기는 군용기보다 커서 훨씬 긴 활주로와 승객안전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중국인이던 누구 던 착륙하면서 해미공군비행장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점이 국가안보상 장점인 것인가? 약점인 것일까?
목포공항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서 무안공항이 추진됨.2007년 여객공항의 능력을 완전히 상실
4. 울진공항. 부풀린 사업비로 인해 비리의 의혹이 많았던 대표적인 허세공항.
울진, 울산주민이라고 공항가지기 싶었겠으나 2010년 년간 여객예상수요가 72만 명이라는 예상치를 토대로 공항청사를 확장하기까지 여러 항공사 등의 기피로 현재는 비행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음.
5.여의도 국제공항:1916년 일본이 군사목적으로 간이비행장을 조성.1926년 확장을 통해 만주-조선-일본을 잇는 기착공항으로 이용하다가 광복 이후 여의도 공항은 대한민국의 관문역할을 함.
상당수 독립투사들이 여의도 공항으로 귀국하기도 했다.
넓은 모래섬의 특징을 활용한 간이공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당시 한강수위의 끊임없는 변화에 따른 범람 등에 대처하지 못하는 등 지리적 한계를 드러나 공항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날이 많아지자 1958년에 현재의 김포공항으로 모든 업무를 이관하고 1971년까지 공군기지로 이용하다가 성남에 군 공항이 개항하고 군공항의 임무마저 이관하자 아파트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과거 비행장 자리는 다 파헤쳐서 공원으로 만들었다.
주요한 독립투사가 입국한 공항이라면 기념할만한 가치가 있을 수 있는데 특별한 기념은 하지 않는다.
6. 대전비행장,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밀린 일본은 서울에 있던 조선군 사령부를 대전으로 옮기면서 활주로 길이 900미터의 엉성한 비행장을 당시 조선학생들을 강제 동원하며 조성했다.
조성의 명분은 ‘성전’이었다.
자국의 제국주의전쟁을 ‘성전’이로 미화해 조선의 어린학생들까지 동원해서 비행장을 조성한 것이다.
대전비행장은 통신장치도 엉성한 간이비행장이었다.
현재의 대전시청이 자리 잡은 지역이다.
대전비행장은 1952년 항공병학교로 그리고 1956년부터 1988년 둔산 신도시가 건설될 때까지 공군기술교육단이 존속돼 왔었다
전국에서 비행장 하나쯤 가지고자 하는 여론이 일반국민이 아니라 공무원출신 무슨 연구원출신의 입을 빌어 정치인들이 투사한다, 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아서 좁은 지역 안에 공항이 많은 편이다.
국제공항도 많은 편이고 국내용공항도 많은 편이다.
여객용 공항과 공군공항이 다른 것은 여객과의 사회적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안개, 해무, 허술함 때문에 이착륙에 애로가 많거나 그로인한 참사가 발생한다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언제든 공항이 기능을 해야 한다.
공군은 훈련 안하면 그만이지만 말이다.
과거부터 지역의 정치인들이 업적이 필요해서 공항, 항구, 철도 등 SOC를 갖추는 여론을 만들어왔다,
이건 서산을 독립자치국가 만드는 일같이 보이기도 한다.
국정원은 서산국 독립을 막아야 한다.
하기는2013년에 '해뜨는 공화국 선포식'을 가져 이미 서산은 독립국 같기는 하지만,
공항이 상당히 많다,
여기에 공군공항까지 하면 작은 나라에 정말 많은 것이다.
* 본칼럼은 서산포스트신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